우리 조직에 맞는 애자일 성과관리 모델 찾기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가 2021년 12월, 새로운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가 2021년 12월, 새로운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의 핵심은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다. 직급별 체류 기간을 없애고 젊고 유능한 인재가 빠르게 성장하는 인사제도를 만드는 데 방점이 있다. 평가제도 변화도 눈에 띈다.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관리자 중심의 평가에서 360도 다면평가로 평가방식을 변경했다. 삼성전자는 왜 새로운 성과평가 방식으로 변화하려는 것일까?
성과평가는 오랜 기간 비슷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일 년에 한 번 목표를 설정하고 연말에 관리자가 평가하는 방식이다. 평가결과는 정규분포 형태로 상대서열화하고 높은 평가등급을 받은 직원에게 보다 많은 보상을 주는 동기부여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성과평가 방식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2010년대 들어서다.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평가 사이클이 년 단위에서 반기, 분기 등으로 그 주기가 점차 짧아진 점이다. 일정한 주기마다 목표를 설정하고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변하는 업무환경에 맞춰 그때그때 목표를 수립하고 업무결과를 리뷰하는 방식도 등장했다. 관리자 위주의 성과평가 방식도 점차 변화했는데, 팀장, 본부장 같은 직책자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코칭과 피드백을 아끼지 않는 크라우드 소싱 방식의 성과리뷰가 부상했다. 평가결과를 산출하는 방식은 상대서열화에서 점차적으로 절대평가로 변하고 있는데, 더 나아가서는 평가등급을 산출하지 않는 방식을 사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애자일 성과평가의 등장
전통적 성과관리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성과평가를 통칭해서 애자일 성과평가로 부른다. 애자일(Agile)은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인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개발방법론으로 주목받은 개념이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만들 때까지 계속 노력하기보다는, 조금은 덜 완벽하더라 어느 정도 완성되면 시장에 출시한 후에 고객의 니즈와 시장흐름을 기민하게 파악해가며 수정, 보완해 나가는 소프트웨어 개발방법론이다. 애자일 성과관리는 성과평가 방식에 이러한 애자일 방법론을 접목한 변화다.
초창기에는 어도비, MS 등 미국 테크 기업 중심으로 애자일 성과평가를 활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 산업으로 확산됐다. 미국 생산성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애자일 성과평가를 사용하는 기업은 6%에 불과했으나, 2016년에는 67%로 10배 이상 급격히 늘어났다. 이제는 현대차, LG, 삼성 등 국내 주요 기업에서도 절대평가나 동료리뷰 같은 애자일 성과평가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 많은 기업에서 애자일 성과평가를 도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MIT와 맥킨지 컨설팅이 함께 한 연구에서는 디지털 시프트를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인터넷, 모바일, 크라우드 등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기업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일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일상화되지 않은 시절의 일하는 방식을 떠올려 보면, 주로 관리자와 개인 간에만 이루어지는 단방향의 업무 형태였다. 관리자는 개인에게 업무를 부여하고, 개인은 업무목표를 혼자서 열심히 완수하면 됐다.
다양한 디지털 업무방식과 툴은 기존의 단방향 업무형태에 변화를 가져왔다. 다양한 구성원의 전문성과 스킬을 하나로 어우르는 것이 쉬워졌고, 관리자와 개인 간에 이루어지던 커뮤니케이션에 더해 함께 일하는 동료와 외부 전문집단까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이해관계자와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다.내가 맡은 일에 어려움이 생기면 동료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수월해졌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지 않더라도 실시간으로 논의하고 업무를 함께 전개해 나가는 것 또한 가능해졌다. 결국 디지털 업무 환경은 기존보다 협업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이전에는 상상치 못한 혁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렇다 보니 관리자가 개개인에 업무목표를 부여해 얼마나 일을 잘했는가를 규명하는 평가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모습이다.
상대서열화 방식에서는 나와 함께 일하는 구성원이 경쟁의 대상이었다면, 디지털 업무환경에서는 함께 성과를 만들어가는 진정한 동료가 된다. 디지털 시프트 시대를 헤쳐 나가는 기업에서는 이제 더 이상, 이만큼은 내 성과이고 저만큼은 동료의 성과라고 구분할 이유가 희미해졌다. 보다 중요한 것은 동료와 함께 만들어가는 협업 성과이며, 이러한 협업의 가치를 높이는 평가와 인정 방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애자일 성과평가 모델 찾기
우리 조직에 맞는 애자일 성과평가 모델을 찾기 위해서는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로 평가 주기에 대한 고민이다. 전통적인 년 단위 성과평가 방식과 상시리뷰 방식 사이에서 어디쯤 포지셔닝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일 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전통적 성과평가의 문제점은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요즘의 업무환경을 보면 좀처럼 일 년 단위 평가 주기를 따르지 않는 모습이다. 예전 같으면 해가 바뀔 때마다 일 년 치 목표를 세워 추진해도 별 무리가 없었지만, 요즘엔 한 해가 아니라 한 분기, 더 짧게는 한 달 안에도 업무 목표가 달라진다. 일 년에 한 번 세운 목표에만 의지해 일하는 방식은 현실적이지 않다.
평가주기와 관련한 핵심은 년, 분기, 반기, 상시 등 단순히 평가를 언제 얼마나 자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지 않다. 진짜 중요한 포인트는 직원들이 평소에 하는 일과 성과관리가 따로 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은 일대로 하고 성과평가는 이와 관련없이 이루어진다면 시간과 노력이 이중으로 든다. 이렇게 되면 결국 성과평가는 내 일과 상관없는 귀찮은 업무로 전락한다. 업무를 하는 과정에 성과리뷰 과정이 녹아들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하는 실제 일을 기준으로 평가를 받는 것, 내가 수행한 업무 과정과 성취한 결과를 기준으로 리뷰를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목적하에 평가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게 포인트다. 이렇게 고민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성과평가 주기를 기존과 동일하게 년 단위로 할지, 반기/분기, 또는 일이 끝나는 그때그때 리뷰하는 상시평가 방식으로 할지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다음으로 고민할 포인트는 누가 평가를 하는가의 문제다. 관리자 중심으로 평가하는 전통적 성과평가에서 구성원은 어떤 불만을 토로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도 잘 안 하면서 윗사람 입맛에 맞추고 눈에 자주 띄면 좋은 평가결과를 받습니다.”
“팀장님이 보기에 눈에 잘 띄는 사람과 실무에서 봤을 때 일 잘하는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평가결과는 팀장님이 보는 대로만 나옵니다.”
이러한 불만의 핵심은 평가자가 업무성과를 적절히 판단해 줄 수 있는 상황과 위치에 있는가이다. 전통적 성과평가에서는 관리자가 부하직원 업무를 일거수일투족 꿰뚫고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실제 조직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관리자는 부하직원의 모든 업무를 세세히 알기 어렵다. 물론 관리자는 부하직원에게 업무목표를 주고 얼마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적절히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업무가 일어나는 과정을 모두 관찰하고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업무가 발생하고 처리되는 일터에서 모든 직원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일일이 관찰하고 그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직에서 구성원이 하는 업무 활동의 90%는 지켜보는 관찰자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관리자는 이러한 일상을 모두 목격하는 사람이 아니다.
스킬 중심으로 인력운영 하기
공급 중심의 인재 확보는 3B으로 요약된다. 내부 인력 육성(Building)하기, 외부 전문인력 빌리기(Borrow), 우수인력을 외부에서 사기(Buy)이다. 3B 전략은 우리에게 익숙한 만큼 그 한계도 명확하다. 내부 육성은 시간이 너무 오래 길린다. 외부에서 인력을 빌리는 전략은 사람이 지닌 역량을 내부화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외부 인재를 사는(채용) 전략은 자칫 인재쟁탈전으로 흘려 급여인상 경쟁으로 치닫는다. 인력 문제의 초점을 공급에서 수요로 전환하면 기존에는 쉽게 떠올리지 못한 옵션을 제시해 준다. 인재 부족과 유출, 급여인상 경쟁, 스킬갭(Skill Gap) 같은 이슈에 있어 3B 전략 외에 다양한 접근을 취할 수 있다.
C사는 미국은 대형마트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 유통기업이다. C사 역시 코로나 감염병으로 사업에 큰 변화를 마주했는데,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고객은 급격히 줄어든 반면 온라인과 전화를 통한 주문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장 내 직무(예: Cashier, 제고관리, 매장고객 응대 등)를 담당하는 직무담당자들은 정리 대상으로 내몰렸다. 한편에서는 전화주문과 고객응대를 하는 콜센터 직원을 확보하느라 허덕였다.
인력 수급의 불균형 문제에 대해 C사는 공급이 아닌 수요 관점으로 접근했다. 매장 내 직무를 과업의 묶음으로, 그리고 구성원을 스킬의 묶음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이런 관점의 전환 덕분에, 하나의 직무에 묶여 있던 매장 직원들은 정리해고 대신 새로운 일을 담당하게 됐다. 업무시간 중 일부는 기존처럼 매장 내에서 일하고,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가상(원격) 콜센터 업무를 수행했다. 기존 직무체계에서 ‘홈 콜센터’ 직무라는 건 없었다. 하지만 매장 직원들은 이 새로운 일에 필요한 대부분의 스킬을 이미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상품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고객을 응대하는 스킬과 경험도 풍부했다.
유럽의 대형보험 D사는 디지털 시대에 맞아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를 꾀했다. 중개인 기반으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에서 소비자가 직접 보험상품을 고르는 디지털 모델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수시로 생기고 없어졌는데, 디지털로 사업모델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들이다 보니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UI, UX, SW 엔지니어 등 디지털 전문인력이 중추적으로 필요했다. 문제는 디지털 인력들이 전통적인 기능 조직 속에서 정해진 일(직무)만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수시로 생기고 없어지는 프로젝트에 디지털 인력을 시의적절하게 투입하는데 걸림돌이 됐다. 인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D사는 모든 디지털 인력을 기존 조직에서 빼내어 "디지털 인재 클라우드(Talent Cloud)"를 구성했다. 인재 클라우드 속한 인력들은 자신들의 스킬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애자일하게 투입됐는데, 경우에 따라서 한 명의 디지털 인력이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담당하기도 했다. 각 프로젝트에 필요한 스킬과 이러한 스킬을 보유한 인재를 최적으로 결합시킨 것이다.
디지털 혁신, 코로나 감염병, 대퇴사 시대, 인재쟁탈전 등으로 HR은 새로운 환경과 마주하고 있다. 새로운 경영환경은 당연하게 받아들인 우리의 가정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인재문제를 공급에서 수요의 관점으로 전환해 보자. 직무와 직무담당자 개념에 기반한 인력 운영 방식을 벗어나 일과 인재에 대한 새로운 렌즈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 스킬 또는 과제를 중심으로 직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접근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곧, ‘직무-사람’라는 일대일 인력운영을 ‘스킬-과제’의 다대다 관계로 전환시키는 시작점이 된다. 나아가 환 경변화에 보다 탄력적인 인력운영 옵션을 만들 수 있다.
머서코리아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