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를 해체하라 

28 2월 2023

회사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늘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 발병 후 퇴사율은 점점 치솟고 있다. 2021년 11월까지 퇴직한 직장인이 450만명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백신 접종 후 경기가 회복세지만 회사를 떠난 사람들은 돌아올 기미가 없어 보인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대퇴사 시대(the Great Regression) 도래했다며 경고한다.

퇴사하는 이유로는,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데, 그 시간이 행복하지 않아서’라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회사를 다니는 우선순위에 변화가 엿보이는 결과다. 일을 단순히 생계 유지의 수단으로 여기던 과거와 달리, 일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경향이 짙어진 모습이다. 자아실현만이 아니라 일과 삶의 균형, 사회적 가치실현 등 개인의 성향에 따라 추구하는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사람들의 선호도가 변한 만큼 앞으로의 HR 환경도 상당히 달라지리라 예상된다.

대퇴사 시대 도래로 기업들의 인재문제는 보다 심각해졌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대처는 대체로 예측 가능한 모습이다. 보다 높은 급여를 제공하거나 구성원 편의를 높이는 근무환경을 확대하는 정도이다. 이런 식의 대응이 지속가능한 접근이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기업의 채용 제안에서 차별화 요소가 단지 급여나 근무환경만이라면, 치열한 인재전쟁 속에서 사용할 무기는 돈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공급 중심 인재전략의 한계

인재문제에 직면한 기업들이 흔히 하는 가정은 직무는 그 자체로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식의 가정은 인재문제를 공급 측면에서 접근하도록 강요한다. 어떤 직무에 공석이 발생하면 그 직무를 대신 담당할 누군가를 조직 내에서 찾거나 전임자와 비슷한 경력을 갖춘 후보자를 외부에서 찾는 게 보편적이다. 누군가 해야할 직무(수요)는 고정해두고 이 직무를 수행할 적합한 사람을 확보(공급)하는데 주력한다.

노동시장에 직무를 수행할 만한 사람이 충분하다면 공급 중심의 인재확보 전략은 효과적이다. 적합한 역량을 갖춘 인력을 시의적절하게 충원할 수 있다. 반면, 노동시장에 잠재적 충원 인력이 충분치 않을 경우에는 문제가 생긴다. 적합한 인재를 원하는 타이밍에 확보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워진다. AI나 빅데이터 같이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직무나 희소한 스킬이 요구되는 직무에서는 인력 공급이 부족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수요는 있는데(심지어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부족하다 보니 기업들은 인재쟁탈전으로 내몰린다. 다급한 상황에 경쟁적으로 보상을 높이는 전략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해부터 일어난 IT업계 연봉인상 쓰나미는 공급 중심 인재확보 전략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IT업계는 물론 다른 업종까지 파격적으로 임금을 인상하는 추세가 올해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일년에 한 번 하는 정기 임금인상과는 별개로 특별인상(Off-cycle)을 서두르는 기업도 눈에 띈다. 성과급을 연봉의 10~40% 수준으로 검토하는 기업도 다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하거나 근무조건이 나은 곳으로 인력이 대거 이동하는 ‘인재 엑소더스’로 번지는 모양세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우려는 ‘공급 중심 인재쟁탈 → 치킨게임식 급여인상 경쟁 → 인재 엑소더스’로 이어지는 흐름이 기업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년 연봉인상 경쟁에 참여한 한 게임업체는 전년 대비 43%나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다른 게임사들도 사정은 비슷해서 실적이 20% 가까이 떨어졌다

인재수요를 변화시키기

‘직무(Job)’ 그리고 ‘직무담당자(Job Holder)’라는 개념은 오랜 기간 HR의 기본 전제로 자리매김했다.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찾아 그 직무를 맡긴다는 접근은 당연한 상식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의 업무환경을 돌아보면 이러한 직무 중심 인력운영이 유효하지 않은 상황을 자주 목격한다. 직무가 아닌 프로젝트 또는 과제에 맞춰 업무를 부여하는 상황이 빈번해지고 있다. 프로젝트나 과제 역시 수시로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새로운 업무방식 확산은 직무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하나의 직무가 고정되어 있다는 가정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직무를 업무환경과 상황에 맞춰 해체하고 재구성할 때 보다 인력운영을 보다 민첩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모습이다.

직무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은 인재문제를 공급이 아닌 수요의 문제로 이동시킨다. “A 직무를 수행하기데 B 직원이 적합한가”는 인력의 공급차원에서 접근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수요 측면으로 바꿔보자. 직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의 전략방향, 그리고 업무환경에서 우리가 완수해야 할 과제(Task)는 무엇인가에서 시작하자. “이러한 과제와 관련이 있는 직무는 무엇인가,우리의 인력들은 과제를 수행하는데 어떤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가,그랬을 때 직무를 어떻게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일을 부여할까”로 질문을 바꾸는 것이다.

직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접근은 구성원의 스킬에 맞게 일을 최적화하는데 주력한다. 구성원을 직무나 직무담당자가 아닌 스킬의 배열로 바라본다. 과제나 프로젝트 또는 스킬 단위로 일과 구성원을 바라보는 렌즈를 구축하는 것이다.

스킬 중심으로 인력운영 하기

공급 중심의 인재확보는 3B으로 요약된다. 내부 인력 육성(Building)하기, 외부 전문인력 빌리기(Borrow), 우수인력을 외부에서 사기(Buy)이다. 3B 전략은 우리에게 익숙한 만큼 그 한계도 명확하다. 내부 육성은 시간이 너무 오래 길린다. 외부에서 인력을 빌리는 전략은 사람이 지닌 역량을 내부화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외부 인재를 사는(채용) 전략은 자칫 인재쟁탈전으로 흘려 급여인상 경쟁으로 치닫는다. 인력문제의 초점을 공급에서 수요로 전환하면 기존에는 쉽게 떠올리지 못한 옵션을 제시해 준다. 인재부족과 유출, 급여인상 경쟁, 스킬갭(Skill Gap) 같은 이슈에 있어 3B 전략외에 다양한 접근을 취할 수 있다.

C사는 미국은 대형마트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 유통기업이다. C사 역시 코로나 감염병으로 사업에 큰 변화를 마주했는데,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고객은 급격히 줄어든 반면 온라인과 전화를 통한 주문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장 내 직무(예: Cashier, 제고관리, 매장고객 응대 등)를 담당하는 직무담당자들은 정리 대상으로 내몰렸다. 한편에서는 전화주문과 고객응대를 하는 콜센터 직원을 확보하느라 허덕였다.

인력 수급의 불균형 문제에 대해 C사는 공급이 아닌 수요 관점으로 접근했다. 매장 내 직무를 과업의 묶음으로, 그리고 구성원을 스킬의 묶음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이런 관점의 전환 덕분에, 하나의 직무에 묶여 있던 매장 직원들은 정리해고 대신 새로운 일을 담당하게 됐다. 업무시간 중 일부는 기존처럼 매장 내에서 일하고,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가상(원격) 콜센터 업무를 수행했다. 기존 직무체계에서 ‘홈 콜센터’ 직무라는 건 없었다. 하지만 매장 직원들은 이 새로운 일에 필요한 대부분의 스킬을 이미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상품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고객을 응대하는 스킬과 경험도 풍부했다.

유럽의 대형보험 D사는 디지털 시대에 맞아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를 꾀했다. 중개인 기반으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에서 소비자가 직접 보험상품을 고르는 디지털 모델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수시로 생기고 없어졌는데, 디지털로 사업모델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들이다 보니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UI, UX, SW 엔지니어 등 디지털 전문인력이 중추적으로 필요했다. 문제는 디지털 인력들이 전통적인 기능 조직 속에서 정해진 일(직무)만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수시로 생기고 없어지는 프로젝트에 디지털 인력을 시의적절하게 투입하는데 걸림돌이 됐다. 인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D사는 모든 디지털 인력을 기존 조직에서 빼내어 "디지털 인재 클라우드(Talent Cloud)"를 구성했다. 인재 클라우드 속한 인력들은 자신들의 스킬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애자일하게 투입됐는데, 경우에 따라서 한 명의 디지털 인력이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담당하기도 했다. 각 프

로젝트에 필요한 스킬과 이러한 스킬을 보유한 인재를 최적으로 결합시킨 것이다. 디지털 혁신, 코로나 감염병, 대퇴사 시대, 인재쟁탈전 등으로 HR 새로운 환경과 마주하고 있다. 새로운 경영환경은 당연하게 받아들인 우리의 가정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인재문제를 공급에서 수요의 관점으로 전환해 보자. 직무와 직무담당자 개념에 기반한 인력운영 방식을 벗어나 일과 인재에 대한 새로운 렌즈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 스킬 또는 과제를 중심으로 직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접근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곧, ‘직무-사람’라는 일대일 인력운영을‘스킬-과제’의 다대다 관계로 전환시키는 시작점이 된다. 나아가 환경변화에 보다 탄력적인 인력운영 옵션을 만들 수 있다.

저자(들) 소개
김주수

머서코리아 부사장

Related Topics

관련 솔루션
    관련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