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애널리틱스 네 단계와 사례
27 12월 2021
기업 내에는 재무자료, 고객정보, 구성원 이력 등 무수히 많은 데이터가 쌓여 있다. 기업들은 쌓인 데이터 안에 숨겨진 패턴과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이런 활동을 애널리틱스라 부른다. 애널리틱스라 하면 대개 수학과 통계 기법을 활용한 ‘분석(Analysis)’을 떠올린다.
틀린 건 아니지만 정확히 맞다고 할 순 없다. 분석은 수학, 통계, 기술적 모델 등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다루는 활동이다. 애널리틱스는 분석을 통해 얻은 시사점을 바탕으로 더 나은 행동을 추천하고 의사결정을 가이드하는 활동까지 포함한다. 이런 측면에서 HR 애널리틱스를 정의하면 다양한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활용해 인적자원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돕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HR 애널리틱스는 분석의 깊이와 제공하는 통찰 수준에 따라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 일상적 리포팅
첫 번째는 HR 데이터를 단순 정리해 현황을 보여주는 단계다. 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 초점을 두고 HR의 효율성을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 이렇게 파악된 정보는 대개 지표 형태로 관리되는데 인적자본 투자수익률(HCROI), 인적자본 부가가치(HCVA), 인당영업 이익 등이 대표적이다. 직급별 인원 비율, 평균인건비, 변동급 비율, 퇴직율, 핵심인재 비율, 장기 승진 누락인원 비율 등도 인력관리에 있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지표관리는 애널리틱스라 말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 지표관리는 데이터의 표준적 측정치와 추이를 제공하는 정도다. 의사결정에 직접적 통찰을 주거나 실행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일상적 리포팅 활동에 가깝다.
2. 고급 리포팅
두 번째 HR 애널리틱스 단계는 ‘현재 상황이 어떠한가’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둔다. 조직의 HR 수준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한편, 외부 지표나 경쟁기업 대비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려준다. 단순 통계나 지표화를 넘어 데이터 간 패턴과 연관성 파악을 위해 텍스트마이닝(Text Mining), 클러스터 분석(Cluster Analysis), 감성분석(Sentiment Analysis),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등 다양한 고급분석 기법을 활용한다.
A사는 국내 대표적인 건설사다. 250개가 넘는 직무에 6천여명에 달하는 직원이 국내외 현장에 흩어져 있다. 많은 직원이 다양한 곳에서 일하다 보니 ‘어떤 직무에, 누가,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데 애를 먹었다. ‘초고층 빌딩’ 같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해당 영역의 전문가를 찾느라 대대적인 조사를 해야 했는데, 반복되는 작업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이로 인해 현업 담당자를 지치게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조사할 때마다 결과에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A건설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널리틱스를 활용했다. 우선 직원들의 근무이력, 지식•스킬 수준, 근속년수 등 다양한 HR 데이터를 분석해 업무 전문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파악했다. 분석결과, 업무 전문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근무기간이나 직급이 아니라 담당직무와 관련성 높은 업무 경험, 고난도 프로젝트 수행 경험, 사업수행 리더십 등으로 밝혀졌다. A사는 이런 요소를 종합 계량화해 전 직원의 ‘직무수행역량’을 4단계로 체계화하고 이를 인력운영에 활용한다.
3. 이슈 해결
세 번째 HR 애널리틱스 단계에서는 직면한 이슈 해결에 주력한다.
‘특정 현상이 왜 발생했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높은 성과를 내는 직원의 특징은 무엇인가’, ‘훌륭한 리더는 어떤 사람인가’, ‘조직몰입을 높이는 업무환경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 데이터를 통해 답을 찾는다. 이슈 해결형 애널리틱스 활동은 일반적으로 1)문제 정의, 2)가설적 모델 수립, 3)데이터 수집•분석, 4)실행 대안 제시의 과정을 거친다.
제록스는 한동안 콜센터 직원관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신입직원 상당수가 입사 후 얼마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신입직원 교육에 인당 5천달러가량을 투자하고 있었기에 회사의 손실은 상당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제록스는 콜센터 직원의 다양한 인적 데이터와 장기근속 간의 관계를 분석했다. 제록스는 ‘이전 직장에서의 근무 경험’이 장기 근속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분석 결과, ‘창의적 성향’을 지닌 직원일수록 오래 근무하며 성과도 우수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제록스는 애널리틱스 결과를 직원 선발 기준에 반영했고, 그 결과 신입직원 조기 이직률이 6개월 만에 이전의 20% 수준으로 감소했다.이직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임원 같은 중요 자리에 외부인재를 영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외부인재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는지 의문을 가지는 시각도 상당하다. 미국의 상업은행인 PNC 파이낸셜도 외부인재 영입을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고민에 답을 찾기 위해 PNC 파이낸셜은 외부 영입임원과 내부 승진임원 간의 성과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내부 승진임원이 부임 첫해 성과가 외부 영입임원보다 현저히 우수했다. 또한 시간이 지 나면서 두 집단의 격차는 줄었지만 여전히 내부 승진임원의 성과가 높게 나타났다. 이후 PNC 파이낸셜은 중요 포지션에 공석이 발생하면 내부 직원을 승진시키는 방식으로 인력운영 방식을 수정했다.
4. 예측 분석
마지막 단계의 HR 애널리틱스 핵심은 예측이다.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이며,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예측적 애널리틱스(Predictive Analytics)의 대표적 활동으로 전략적 인력계획을 꼽을 수 있다. 전략적 인력계획은 다양한 사업환경과 영향 요인을 시뮬레이션해서 미래에 필요한 인력 수요를 예측한다.
디즈니랜드 방문 고객수는 계절, 날씨, 이벤트 등 여러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들쑥날쑥한 고객 수에 맞춰 직원을 배치하는 일은 HR에게 큰 골칫거리다. 너무 여유 있게 직원을 준비해 두면 쓸데없이 노는 직원이 많아져 인건비 손실이 생긴다. 반대로 충분한 직원을 배치하지 않으면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등 고객 불편을 초래한다. 월트디즈니는 테마파크의 인력운영을 최적화하기 위해 예측 애널리틱스를 활용한다. 테마파크 입장객 수, 예약된 호텔 객실 수, 지역의 날씨 등을 시뮬레이션해 향후 6주간 필요한 직원 수요를 예측하는 것이다. 예측 결과는 채용, 이동, 배치에 반영된다.
세계 수준의 조선소를 보유한 B사도 전략적 인력계획 활동을 한다. 수주 기반 사업을 하는 B조선사의 고민은 매해 건조하는 선박•플랜트가 일정치 않다는 점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수주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야 할 선박•플랜트의 유형과 물량이 달라진다. B조선사는 들쑥날쑥한 프로젝트에 맞춘 최적의 인력운영을 위해 ‘프로젝트 스태핑 모델링’을 개발했다. 과거 10년간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던 인력 데이터를 분석하여 선박•플랜트 유형별로 ‘어떤 직무에, 어떤 스킬을 가진 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정의했다. 이렇게 정의한 프로젝트 스태핑 모델에 변화하는 수주 상황을 대입해 가며 향후 5년간의 인력수요를 예측한다.
HR에서 일어나는 많은 활동은 영업, 재무 등 다른 영역처럼 정량화가 쉽지 않다.
HR에서 일어나는 많은 활동은 영업, 재무 등 다른 영역처럼 정량화가 쉽지 않다. “직원들의 사기는 어떤가요”란 질문에 “90점입니다”, “작년보다 5% 상승했습니다”라고 답하기 곤란하다. “과거에 비해 좋아졌습니다”, “경쟁사 직원보다 낫습니다”, “직원들을 만나보니 활기차 보입니다”와 같이 정성적이고 모호하게 표현하곤 한다.
정량화가 어려운 인사의 특징은 데이터 기반의 HR 운영을 뒤처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합리적 검증 없이 오래된 관행이나 타사의 성공사례를 따라하는 기업을 흔히 볼 수 있다. 개인적 감에 의지해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내 감각으로는…’, ‘오랜 경험에 비춰볼 때…’ 같은 주관적 근거를 들먹이며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식이다. 하지만 HR 활동은 조직 전체뿐만 아니라 개개인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하다. 오래된 관행, 타사의 성공사례, 개인의 감에 의지한 결정을 할 경우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직급단계를 폐지했다가 원래대로 회귀하는 상황, 성과연봉제로 전환했다가 호봉제로 돌아가는 사태 등은 합리적 검증 없이 HR을 운영해 혼선을 빚은 대표적 사례다. HR 활동이 보다 신뢰 있는 가치를 만들어 내려면 기존 관행, 타사의 성공사례, 개인의 감 이상의 합리적 운영을 고민해야한다. HR 애널리틱스는 데이터를 통해 HR 운영의 합리성을 높여준다. 이제 데이터가 들려주는 진실에 귀를 기울일 때가 왔다.